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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주니어클래식 8]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행복의 조건을 묻다

유원기 (지은이) | 사계절 | 2009년 12월

 


[중요한 내용]


정치의 근본적인 목적은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과 입법자는 어떤 정치 체제가 행복을 획득하는 데 가장 적합한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통치자의 수에 따라 한 사람이 통치하는 군주제, 적은 수의 사람이 통치하는 귀족제, 많은 수의 사람이 통치하는 폴리테이아제로 나눈다. 이것들은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체제들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정치 체제들의 왜곡된 형태로서 참주제, 과두제, 민중제가 있다고 말한다.

 

참주제는 군주제의 왜곡된 형태로 한 사람이 통치하며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과두제는 귀족제의 왜곡된 형태로 적은 수의 부유한 사람이 통치하며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민중제는 폴리테이아제의 왜곡된 형태로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통치하며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바람직한 체제와 바람직하지 못한 체제의 기준은 그것이 공익을 추구하는가 또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

 

군주제의 종류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영웅시대의 군주제이다. 왕의 자격이 자손에게 이어진다는 점에서 세습적이고 법적 절차를 따른다는 점에서 합법적이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체제이다. 둘째는 비그리스인의 군주제이다. 세습적이고 합법적이지만, 노예 출신의 국민들은 왕이 전제적인 통치를 해도 반항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이것은 왕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참주제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셋째는 고대의 독재 체제이다. 이 체제에서는 왕이 세습되지 않고 선출되며, 왕의 임기는 한시적이거나 또는 종신적이다. 폭압적이라는 점에서는 참주제지만, 신하들이 그것에 동의한다는 점에서는 군주제이다. 넷째는 스파르타의 군주제이다. 이것은 스파르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합법적이고 세습적인 군주제이다. 스파르타의 왕은 통치자라 할지라도 국민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체제의 통치자는 평상시에는 국민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지 않지만, 전시에는 국외에 한해서 권한을 갖는다.

다섯째는 절대 군주제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서 모든 것을 통치하는 군주제이다. 그러나 왕의 절대적인 권력은 폭군의 권력과는 다르며, 왕의 역할과 권한은 가정을 통제하는 가장의 역할과 권한에 비유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에 의한 통치보다 가장 우수한 사람에 의한 통치가 더 낫다고 말한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작용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런 감정 요소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상황에서 법을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특정한 사안에 법이 권위를 갖지 못할 때에는 사람들이 판결을 내려야 하고,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우수한 한 사람이 결정하는 것보다 열등한 여러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제가 적은 수의 우수한 사람들이 공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정치 체제라고 말한다. 여기서 귀족은 일반 국민보다 상대적으로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탁월한 사람이다. 그리고 귀족제에서 통치자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데, 그들의 관직은 부와 공헌도에 따라 결정된다. 귀족제의 특징은 군주제의 왕보다 약한 권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통치하는 군주제에서는 왕이 혼자 절대적인 권력을 갖지만 귀족제는 여러 사람들이 통치하고 권력을 나누어 갖게 되기 때문에 통치자가 갖는 권력이 군주제보다 약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종류의 귀족제를 소개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첫째는 카르타고의 경우처럼 부와 탁월성, 그리고 일반 대중의 인구수를 모두 고려하는 귀족제이다. 둘째는 스파르타의 경우처럼 탁월성과 인구수의 두 가지를 고려하는 귀족제이다. 그리고 셋째는 과두제보다 폴리테이아제의 성향을 가진 귀족제이다.

귀족제는 군주제처럼 탁월성을 강조하며, 과두제처럼 부를 강조하고, 또한 민중제처럼 일반 국민의 인구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여섯 가지 정치 체제의 특징들을 포함하는 혼합 정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폴리테이아제는 많은 수의 사람이 공익을 위해 통치하는 정치 체제이다. 이 체제는 부유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중간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치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테이아제를 적은 수의 부유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과두제와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민중제의 혼합된 정치 체제로 본다. 다시 말해 폴리테이아제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통치하는 체제이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의 자유와 부유한 사람의 부를 통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과두제와 민중제를 혼합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형태는 과두제와 민중제의 법률을 모두 받아들여 혼합하는 방식이다. 부유한 사람에게는 벌금을 부과하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보수를 주면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모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정치 체제가 만들어진다.

두 번째 형태는 과두제와 민중제의 중간을 취하는 방식이다. 지나치게 많거나 지나치게 돈이 적은 배제하고 중간 계급의 사람만이 통치에 참여하게 만들면, 바람직한 정치 체제가 될 수 있다.

세 번째 형태는 과두제와 민중제의 장점을 혼합하는 방식이다. 과두제에서는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가져오고 민중제에서는 통치자의 자격 요건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을 가져온다. 이런 장점들을 혼합하여 모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정치 체제인 폴리테이아제를 만들 수 있다.

 

참주제는 한 사람이 통치한다는 점에서 군주제와 같다. 하지만 군주제는 공익을 추구하는 반면에 참주제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참주제는 국민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폭압적으로 통치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통치 받으려 하고 왕이 자애롭게 통치하는 군주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 사람이 통치하는 정치 체제에서, 그것이 공익을 추구하는 군주제가 되는가 또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참주제가 되는가 하는 문제는 통치자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 가졌던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왕이 자신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경우에는 자애로운 왕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폭군이 될 것이다.

 

과두제는 통치자의 수가 적어야 하며 또한 그 통치자가 반드시 부자여야 한다. 과두제는 통치자의 수가 적다는 점에서 귀족제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귀족제는 공익을 추구하는 반면에 과두제는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두제를 네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첫째는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의 수는 많지만. 재산의 양이 아주 적은 과두제이다. 이 경우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재산을 소유한 다른 사람들이 정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참여하기 때문에 사람보다는 법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둘째는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의 수가 첫째 형태보다 적지만 재산의 양은 많은 과두제이다. 이 경우에 사람들은 좀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의 이익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지위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이 법보다 더 강력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정부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강한 권력을 얻지 못하게 막는다.

셋째.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의 수가 둘째 형태보다 적지만 재산의 양은 많은 과두제이다. 이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며, 그런 지위와 권력을 후손들에게 세습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한다.

넷째, 소수의 사람들이 아주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과두제이다. 이 경우는 통치자의 수를 제외하고는 독재적인 권력을 갖는 참주제와 비슷하다. 법보다는 통치자가 더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다.

 

과두제는 '벌금'이라는 수단을 이용함으로써 부유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유한 사람들로 하여금 반드시 통치에 참여하게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은 권력과 군사력과 같은 힘을 갖게 된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결국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정치 체제를 민중제라고 부른다. 과두제는 적은 수 의 부유한 사람이 통치하는 반면에 민중제는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이 통치한다. 이처럼 과두제와 민중제는 적은 수의 사람에 의한 통치인가 또는 많은 수의 사람에 의한 통치인가 하는 차이점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중제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가난한 사람이 통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유한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는 평등한 민중제이다. 이 체제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은 특권을 얻게 되지도 않고, 부유한 사람의 특권이 제한되지도 않기 때문에 이 체제에서 자유와 평등이 가장 잘 발전될 수 있다.

둘째,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는 민중제이다. 이 경우에는 재산을 갖지 못했던 사람이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갖게 되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재산을 잃은 사람은 정치에 참여할 자격도 잃게 된다.

셋째, 자격을 상실하지 않은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민중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정치 체제에서는 법률이 통치자보다 우월하다고 말한다. 통치자의 재산 소유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다섯째,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통치자 집단이 법보다 우월한 민중제이다. 이 경우에 통치자 집단은 포고령을 통해 법률의 내용을 수정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민중제는 현대 민주주의와 유사한 점이 있다. 주어진 사안을 다수결 원칙에 따라 정한다는 점은 분명히 현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민중제는 노예와 여성과 외국인을 배제하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모든 성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도록 허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재산이 필요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도 현대 민주주의와 다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자격을 갖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민을 국가의 일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다만 '국가의 일에 참여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국민이란 분명히 한 국가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국민의 범위와 자격에 대해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국제법상의 원칙은 없다. 다만 각 국가의 이해와 필요에 따라 법률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는 형법의 적용 범위에 관한 사고방식으로, 국적을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는지, 영역을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구분한다. 속인주의는 자국 영역의 내외를 불문하고 국적을 기준으로 하여 모든 자국민에 대해 법을 적용하는 원칙이다. 어떤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 그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거주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나라의 법률에 적용받는 것을 말한다. 속지주의는 자국민과 타국민을 불문하고 자국 영역을 기준으로 하여 그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법을 적용하는 원칙이다. 어떤 나라의 영토 내에 거주하는 사람이 그 나라의 법률에 적용받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개인은 국가의 존속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하고, 국가는 개인의 존속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이 서로 존속하려면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를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국가는 생존 이상을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국가는 선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이다. 국가의 선이란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며, 이는 국가는 물론이고 그에 속한 모든 국민을 위한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자급자족하지 못하게 된다면, 국민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고 결국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를 삶의 목적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정도의 국민들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말한다.

Posted by i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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